최근 몇 년 동안은 아니지만 나는 꽤 오래전부터 다이어리에 내 생각을 기록해왔다. 불안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눈과 입을 다 틀어막고 살아야 했던지라 뭐라도 적으면서 그 시간들을 버텨냈다. 그렇게 써온 노트들만 한 박스. 박스의 무게는 혼자 들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. 노트에 뭐 그리 대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적혀있는 것도 아니다. 그저 순간순간 불안하고 답답해 미칠 때즘 펜을 들고 이렇게 한 두문장 적는다.
2018년 7월 11일 4:30 pm
짜증나 미치겠다. 답답하다.
시원한 바닐라 라떼가 먹고 싶다.
신기하게도 이렇게 몇 자 적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. 짜증 나다고, 답답하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꼈던 내게는 이 노트가 마치 몸의 일부와도 같았다. 어떤 날은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울 만큼 내 복잡한 생각들을 적기도 했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도 노트에 쏟아냈다. 하지만 나만 보는 이 노트에조차도 '~ 해야 한다'라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늘 시달려야 했다. 그렇게 털어내지 못해서 고여버린 분노와 다른 감정들은 썩고 썩어서 나를 병들게 만들었다. 그리고 몇 년 전 정신건강질환 진단을 받은 날부터 나는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다. 글로 써서 풀어내기엔 너무나 폭풍 같은 분노였고 모든 것이 귀찮고 의미 없게 느껴졌다.
그러다가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의 인터뷰 영상 속 이 몇 마디 때문이었다. (글 하단에 링크 첨부)
"사람을 하나 만든다고 합시다. 그럼 이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일까요?
바로 힘들 때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능력이에요. 그게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입니다.
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다고 믿는 마음이에요."
충격이었다. 나는 그동안 긍정적인 마음 자세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다.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긍정적인 마음 자세인데 이것은 좋은 것만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었다. 그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균형적으로 또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고 또 그렇다고 믿는 믿음이었다. 크든 작든 살면서 겪게 될 힘든 상황에서 나는 그동안 나쁜 점만 혹은 좋은 점이라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그 부분만 생각했다. 그래서 매사에 화가 나고 짜증 나고 불안했다.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. 노트를 통해 생각을 적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. 그저 턱을 괴고 펜을 굴리며 답답한 마음으로 몇 자 적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.
그래서 나는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로 했다. 이번엔 어떤 규칙이나 기준도 없다. 진정한 해방을 위한 내 해방일지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. 나는 이 일지를 기록하고 내 생각들을 쏟아낼 때 그 속에서 여러 좋은 점들을 찾아내 보려 한다. 지나영 교수는 이 좋은 점을 '감사한 점'이라고 말했다.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감사한 부분을 찾아낼 때 우리의 뇌는 온갖 좋은 호르몬을 뿜어낸다는 것이다. 기분이 좋아지고 무기력에서 해방되는 호르몬이 솟아나는 것이다.
직접 글로 기록하면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또 내 행동을 바꾸는 훈련을 통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인 '긍정적인 마음의 자세'는 얼마나 길러질 것이며 또 나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. 벌써 신이 난다. 해방일지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기록하는 모든 순간들은 나를 해방시킬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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